스테이블코인의 세 가지 길 — 1달러를 약속하는 세 가지 방법
모든 스테이블코인은 1달러를 약속한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는 방식은 셋으로 나뉘며, 셋이 걸어온 길은 결국 매우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Lee Chang Jun
Insights
스테이블코인은 크립토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자산이다. 거래소에서 다른 코인을 사고팔 때 기준이 되며, 비트코인 가격이 출렁일 때 자본이 잠시 옮겨두는 곳이고, 국경을 넘어 돈을 보낼 때에도 자주 쓰인다. 시장 규모는 약 2,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모든 스테이블코인이 약속하는 것은 같다.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는 방식은 셋으로 나뉘며, 각각의 작동 원리도 매우 다르다. 어떤 발행사는 실제 달러로 가치를 보증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다른 암호자산을 담보로 잠가두며, 또 다른 프로젝트는 알고리즘만으로 균형을 맞추려 한다. 적어도 한동안은 셋 다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걸어온 길은 결국 매우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법정화폐 담보형 — 가장 흔하고, 가장 중앙화된
USDT(테더)와 USDC는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사용자가 발행사에 달러를 보내면, 발행사는 그 돈을 은행에 예치하거나 단기 미국 국채로 보유하고 그만큼의 토큰을 발행한다. 이론적으로 1 USDC는 언제든 1달러로 교환할 수 있으며, 2026년 현재 두 토큰의 합산 시가총액은 1,500억 달러를 넘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장 안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구조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는데, 결국 발행사를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발행사가 정말로 그만큼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지,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특정 지갑을 동결하라는 정부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의문은 늘 따라다닌다.
실제 사례도 적지 않다. 테더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OFAC 제재 대상 지갑들을 동결해왔으며, USDC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USDC 발행사인 서클(Circle)이 그곳에 예치해둔 33억 달러가 묶일 위기에 처했고, USDC 가격은 한때 0.87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미국 정부가 SVB 예금을 전액 보장한다고 발표하면서 페그는 회복되었지만, 이 사건은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스테이블코인 역시 결국 전통 은행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암호자산 담보형 — 탈중앙화의 가능성
DAI는 다른 길을 택했다. 메이커다오(MakerDAO)가 발행하는 이 스테이블코인은 운영에 관여하는 회사나 은행이 없다. 대신 사용자가 이더리움(ETH) 같은 암호자산을 스마트 컨트랙트에 잠그면, 그 담보 가치에 비례하여 DAI가 발행되는 구조다.
이 모델의 가장 큰 강점은 검열 저항성이다. 어떤 정부도 DAI 발행을 중단시킬 수 없고, 특정 지갑을 임의로 동결할 수도 없다. 모든 담보는 온체인에 투명하게 기록되어 누구나 직접 검증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자기 자신의 가치 저장 수단이라면, DAI는 그 위에서 작동하는 자기 자신의 결제 수단이 되려 한다.
그러나 약점도 분명하다. 자본 효율이 낮다는 점이다. 1달러 어치 DAI를 발행하려면 최소 1.5달러, 일반적으로는 2달러 이상의 담보가 필요하다. 또한 담보 자산의 가격이 급락하면 청산 위험이 발생한다. 이더리움 가격이 30% 가까이 빠지면 수많은 포지션이 강제 청산되면서 DAI 페그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DAI는 탈중앙화를 위해 자본 효율을 포기한 셈이다. 그 때문에 시장 점유율은 USDT와 USDC에 비해 작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알고리즘형 — 무너진 약속
세 번째 길은 가장 야심찼지만, 가장 처참하게 실패한 모델이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담보를 거의 두지 않거나 아예 두지 않는다. 대신 알고리즘과 차익거래 인센티브를 통해 페그를 유지한다. 가격이 1달러 위로 오르면 공급을 늘리고,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자본 효율은 이론상 100%에 달하며,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혔다.
그러나 2022년 5월, 한국인 권도형이 만든 테라(Terra) 생태계의 UST가 붕괴하면서 이 모델의 한계가 드러났다. 시가총액 180억 달러에 달하던 스테이블코인이 며칠 만에 휴지조각이 되었고, 짝꿍 토큰이었던 루나(LUNA)는 99.99% 폭락하였다. 한국에서만 약 28만 명의 투자자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은 흔히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으로 불리는 현상이었다. UST 가격이 페그 아래로 떨어지자 사람들이 패닉 매도에 나섰고, 시스템은 더 많은 루나를 발행하여 UST를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루나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가격이 곧 폭락하였고, 결과적으로 UST를 떠받칠 자산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알고리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일정 수준의 신뢰가 필요한데,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시스템 전체가 함께 무너진 것이다.
테라 사태는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알고리즘만으로는 신뢰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실체 있는 담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 가지 모델의 비교
종류 | 대표 | 신뢰 원천 | 강점 | 약점 |
|---|---|---|---|---|
법정화폐 담보 | USDT, USDC | 발행사 신용 | 안정성·유동성 | 중앙화·검열 |
암호자산 담보 | DAI | 온체인 담보 | 탈중앙·투명성 | 자본 비효율 |
알고리즘 | UST(붕괴) | 알고리즘·인센티브 | 자본 효율 | 페그 불안정 |
세 모델은 모두 명확한 trade-off를 안고 있다. 법정화폐 담보형은 안정성을 얻은 대신 중앙화와 검열의 위험을 떠안았고, 암호자산 담보형은 탈중앙화를 얻은 대신 자본 효율을 포기하였다. 알고리즘형은 자본 효율을 끝까지 추구하다가 결국 안정성을 잃었으며, 그 대가는 매우 컸다.
다음 진화는 어디로
지금까지 등장한 세 모델 중 완전한 답에 도달한 것은 없다. 가장 안정적이라 평가받던 USDC조차 발행사가 의존하던 은행 하나가 흔들리는 순간 디페깅을 겪었다. DAI는 탈중앙화의 모범적인 사례로 여겨지지만, 시장이 요구하는 규모까지 확장하기에는 자본 효율의 벽이 너무 높다. 알고리즘은 이미 처참한 실패의 기록을 남긴 상태다.
그렇다면 다음 진화는 어떤 방향으로 향해야 할까. 한 가지 흐름은 분명해 보인다. 발행사 신용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자본 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담보 구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비트모빅 생태계는 자체 메인넷 자산을 기반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잠금 방식을 넘어, 가격 안정성이 검증된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도다. 구체적인 설계와 작동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어떤 신뢰 구조 위에서 1달러를 약속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은 아직 누구도 내놓지 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