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ct — 미국이 그어준 스테이블코인의 새로운 선
2025년 미국에서 통과된 GENIUS Act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룰을 바꿨다. 어떤 모델이 살아남고 어떤 모델이 사라지는가에 대한 미국의 첫 공식 답안이다.
Lee Chang Jun
Insights
2022년 5월 테라(Terra) 생태계가 무너지며 시가총액 180억 달러의 UST가 며칠 만에 휴지가 되었을 때, 그 충격은 단순한 시장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만 약 28만 명의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고, 미국 의회에서도 본격적인 규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5년, 미국은 마침내 스테이블코인을 법으로 정의하였다. 이름은 GENIUS Act, 정식 명칭은 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2,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였고 사실상 크립토 시장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법안의 의미는 단순한 규제 이상이다. 어떤 형태의 스테이블코인은 살아남고 어떤 형태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미국의 첫 공식적인 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GENIUS Act가 요구하는 것
GENIUS Act는 결제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에 대해 다섯 가지 핵심 의무를 부과한다.
첫째는 1:1 백킹 의무다. 발행되는 토큰 한 개당 1달러에 해당하는 자산이 준비금으로 보유되어야 하며, 그 자산은 현금이나 단기 미국 국채처럼 안전하고 즉시 환금 가능한 형태에 한정된다. 위험 자산이나 다른 암호자산을 준비금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둘째는 월간 제3자 감사다. 발행사는 매달 독립된 회계법인으로부터 준비금 현황을 검증받아야 하며, 그 결과는 공개되어야 한다. 분기별이나 연간이 아닌 월간 단위로 검증을 요구한 점이 이전 규제 논의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셋째는 발행자 자격의 제한이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주체는 연방 또는 주 차원의 인가를 받은 금융기관, 또는 그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사업자로 한정된다. 누구나 토큰을 찍어낼 수 있던 시대는 사실상 종료되었다.
넷째는 파산 격리 수탁(Bankruptcy-Remote Custody) 구조의 의무화다. 발행사가 파산하더라도 사용자의 자산은 보호되어야 하며, 준비금은 발행사 본체의 자산과 분리된 별도의 신탁 구조로 관리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AML/KYC 프로토콜이 명시적으로 요구된다. 자금세탁 방지와 본인 확인 절차를 갖추지 못한 발행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테라 사태가 법이 되었다
GENIUS Act가 가져온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사실상 차단했다는 점이다. 1:1 백킹 의무가 명시된 이상, 담보 없이 알고리즘과 인센티브만으로 페그를 유지하는 모델은 더 이상 합법적인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이 될 수 없다.
이는 결국 테라/UST 사태의 교훈이 법조문으로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본 효율 100%, 무한 확장 가능성이라는 매력적인 약속을 내세웠던 알고리즘 모델은, 그 약속이 무너지는 순간 시장 전체에 미친 충격이 너무 컸다. 미국은 같은 충격을 다시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USDT는 어떻게 되는가
GENIUS Act는 미국 외 지역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별도의 조건을 두고 있다. 미국 시장에 접근하려는 해외 발행사는 미국 내 등록 절차와 일정 수준의 규제 준수를 충족해야 하며, 단순히 해외에서 발행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유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는 미국 외 지역에 본사를 둔 테더(USDT)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면 미국에서 발행되고 처음부터 GENIUS Act 기준에 맞춰 설계된 USDC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헤게모니가 다시 한번 재편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변화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GENIUS Act 통과 이후 시장에는 몇 가지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기관 채택의 가속화다. 명확한 규제 틀이 마련되면서, 그동안 법적 불확실성 때문에 진입을 망설이던 전통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스테이블코인 활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비트고(BitGo)와 같은 적격 수탁기관이 GENIUS Act 기준에 맞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수탁을 동시에 맡는 사례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진입 장벽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작은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나 충분한 규제 준수 역량을 갖추지 못한 발행사는 시장에서 정리되는 흐름이 뛚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시장은 소수의 대형 발행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체 시장 규모 측면에서는 오히려 성장이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규제 명확성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자본 유입을 만든다는 흐름이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분석에서는 GENIUS Act 통과 이후 5년 내에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1조 달러 규모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음 단계의 질문
GENIUS Act는 분명한 진전이지만, 동시에 한 가지 한계도 함께 안고 있다. 이 법안은 본질적으로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 즉 USDT나 USDC와 같은 1:1 달러 백킹 모델에 최적화되어 설계되었다. 그렇다면 암호자산을 담보로 하는 DAI 같은 모델, 또는 그보다 더 새로운 형태의 담보 구조는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미국이 한 가지 답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아시아와 한국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규제 환경과 다른 시장 수요 위에서 또 다른 형태의 스테이블코인이 시도될 수 있으며, 비트모빅 생태계 역시 자체 메인넷 자산을 기반으로 이 큰 흐름 위에서 어떤 답이 가능할지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구체적인 설계는 별도의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GENIUS Act가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크립토 시장 내부의 자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제 미국 금융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되었으며, 동시에 글로벌 결제 인프라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룰이 바뀌 만큼 다음 진화 역시 그 룰 위에서, 또는 그 룰을 넘어 새로운 영역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